걸으면 다리가 아프고, 앉으면 괜찮아지는 이유

진료실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10분쯤 걸으면 다리가 저리고 무거워져서 쉬어야해요. 그런데 잠깐 앉아 있으면 또 괜찮아져서 걸을 만해요.”

이 말을 들으면 대개 무슨 병인지 짐작이 갑니다. 증상 자체가 워낙 특징적이라서요. 여기에는 이름도 붙어 있습니다. 신경인성 간헐적 파행(neurogenic claud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증상이 나타나는 방식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척추관은 자세에 따라 넓어졌다 좁아집니다

척추관의 허리가 펴진 상태와 숙인 상태를 비교한 다이어그램. 허리를 펼 때와 숙일 때의 척추관 변화 설명.

척추체(vertebral body) 뒤쪽에는 신경 다발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습니다. 척추관(spinal canal)입니다.

이 통로의 넓이는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허리를 펴면 좁아지고, 숙이면 넓어집니다.

허리를 펴면 척추뼈 사이 간격이 뒤쪽에서 좁아지면서 황색인대가 안쪽으로 접혀 들어옵니다. 여기에 후관절이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통로가 뒤쪽에서 좁아집니다.

카데바 요추를 이용해 굴곡과 신전 상태를 측정한 연구에서, 신전 시 척추관 면적과 정중시상 직경이 모두 유의하게 감소했고 굴곡에서는 반대였습니다. 변화 폭은 대략 10% 안팎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이 변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여유 공간이 충분하니까요. 그런데 퇴행성 변화로 통로가 이미 좁아진 상태라면, 허리를 펴는 것만으로 신경이 눌릴 수 있습니다.

서서 걸을 때 우리는 허리를 폅니다. 앉으면 허리가 조금 숙여집니다. 그래서 걸으면 아프고 앉으면 괜찮아집니다.

여기에 혈류 문제도 있습니다. 신경도 피를 받아야 하는데, 눌린 상태에서 걷느라 산소 요구량이 늘면 공급이 못 따라갑니다. 다리가 저리고 무겁고 힘이 빠지는 느낌이 나는 데는 이 요인도 관여합니다.

그래서 생활에서 아래와 같은 일들이 생깁니다

이 원리를 알면 환자분들이 겪는 일들이 하나로 설명됩니다.

마트에서는 오래 걷는데 그냥은 못 걷습니다. 카트를 밀면 자연스럽게 앞으로 숙이게 되거든요. 워낙 흔해서 이걸 부르는 이름도 따로 있습니다.

자전거는 타는데 걷지를 못합니다. 자전거를 타면 허리가 굽습니다. 다리는 똑같이 쓰는데 자세가 다릅니다.

오르막이 내리막보다 편합니다. 올라갈 때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내려갈 때는 허리를 펴게 됩니다. 보통은 내려가는 게 쉬울 것 같은데 반대라고 하시면, 그게 오히려 진단 단서입니다.

걷다 보면 점점 구부정해집니다. 본인은 모르는데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알아서 편한 자세를 찾아간 겁니다.

다리 혈관 문제와 자주 헷갈립니다

증상이 비슷한 병이 하나 있습니다. 다리로 가는 동맥이 좁아져서 생기는 혈관성 파행(vascular claudication)입니다. 걷다가 다리가 아파서 쉬어야 한다는 점이 똑같습니다.

구별하는 지점이 몇 개 있습니다.

어떻게 쉬어야 괜찮아지는가.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혈관 문제는 그냥 멈춰 서 있기만 해도 좋아집니다. 신경 문제는 서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앉거나 허리를 숙여야 합니다.

아픈 곳이 어디인가. 신경 쪽은 허리와 엉덩이에서 시작해 다리로 내려갑니다. 혈관 쪽은 종아리 같은 다리 근육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갑니다. 방향이 반대입니다.

얼마나 빨리 풀리는가. 혈관 쪽은 쉬면 금방입니다. 신경 쪽은 회복이 더딥니다.

오르막에서 어떤가. 신경 쪽은 오르막이 편하고, 혈관 쪽은 오르막에서 더 아픕니다. 오르막을 오르는데는 근육에 혈류가 더 필요한데 부족하니 통증이 발생합니다.

자전거는 어떤가. 신경 쪽은 자전거를 잘 탑니다. 혈관 쪽은 자전거에서도 아픕니다.

발등의 맥박. 발등에서 뛰는 동맥이 만져지는지 확인합니다. 혈관 쪽은 약하거나 안 잡힙니다. 진료실에서 손으로 하는 간단한 검사인데 판단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신경성 파행과 혈관성 파행의 차이를 설명하는 표

연구에서도 이 조합의 변별력이 확인됐습니다. 무릎 위쪽 증상에 선 자세에서 악화되고 앞으로 숙이면 편해진다면 신경성일 가능성이 크게 올라가고, 반대로 무릎 아래쪽 증상에 서 있기만 해도 편해진다면 혈관성 쪽으로 강하게 기웁니다.

닮은 병이 더 있습니다

말초신경병증은 양쪽 발에서 양말 신는 부위처럼 대칭적으로 저립니다. 걷는 것과 무관하게 증상이 있고, 밤에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뇨가 있으시면 특히 이쪽을 함께 봐야 합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정반대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불편하고 움직이면 나아집니다. 주로 밤에 나타납니다.

고관절 관절염은 사타구니에서 앞 허벅지로 뻗치는 통증이 특징입니다.

이것들은 대개 병력만 자세히 들어도 구분이 됩니다. 문제는 진료 시간이 짧으면 그 병력을 들을 시간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MRI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상으로는 심하지 않다는데 왜 이렇게 못 걷나요.”

이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MRI는 누운 자세에서 찍습니다. 그런데 이 자세에서는 체중이 척추에 실리지 않고 허리의 굴곡도 서 있을 때와 달라집니다. 증상이 가장 심한 자세, 그러니까 서서 걸을 때의 상태와 다른 조건에서 찍히는 셈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에는 서 있는 자세나 척추에 하중을 준 상태에서 촬영하기도 합니다. 일반 MRI가 옆쪽 공간을 실제보다 10% 이상 넓게 평가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게 뭘 뜻하냐면, 영상보다 증상이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상 소견과 증상이 어긋날 때 증상 쪽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있는 이유입니다.

반대 방향도 성립합니다. MRI에서 좁아 보여도 증상이 없다면 치료 대상이 아닙니다. 협착은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생깁니다.

진료실에서 이걸 말씀해 주세요

이 병은 병력이 진단의 절반 이상입니다. 다음 내용을 정리해서 가시면 진료가 훨씬 정확해집니다.

몇 분 또는 몇 미터쯤 걸으면 증상이 나오는지. 쉬면 몇 분 만에 풀리는지. 서 있기만 해도 되는지 앉아야 하는지. 자전거는 탈 수 있는지. 카트나 유모차를 밀면 달라지는지. 오르막과 내리막 중 어느 쪽이 힘든지.

특히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점점 줄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병은 서서히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환자분들은 “나이 드니 그렇지” 하고 넘기시다가 어느새 100m도 못 걷는 상태로 오십니다.

이런 경우는 바로 병원으로

드물지만 응급으로 봐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대소변을 조절하기 어려워지거나, 사타구니와 항문 주변 감각이 둔해지거나, 양쪽 다리에 힘이 빠르게 빠지는 경우입니다. 이건 신경 다발이 심하게 눌린 상태일 수 있어서 시간을 다툽니다.

그 외의 경우라면 대부분 급하지 않습니다. 비수술적 치료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반응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걸을 수 있는 거리가 계속 줄고 있다면, 그 변화를 기록해두고 상의하시는 게 좋습니다.


참고

  •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척추학』, 군자출판사
  • Inufusa A, An HS, Lim TH, Hasegawa T, Haughton VM, Nowicki BH. Anatomic changes of the spinal canal and intervertebral foramen associated with flexion-extension movement. Spine 1996;21(21):2412-20
  • Willén J, Danielson B. The diagnostic effect from axial loading of the lumbar spine during computed tomography and magnetic resonance imaging. Spine 2001;26(23):2607-14
  • Lumbar Spinal Stenosis. StatPearls, NCBI Bookshelf
  • 日本脊椎脊髄病学会, Clinical Practice Guidelines for Lumbar Spinal Stenosi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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