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터널증후군이라고 해서 주사도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는데, 좀처럼 나아지질 않아요.”
이런 경우 가운데 손목이 아니라 목이 원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단추 채우기가 굼떠지고, 젓가락질이 서툴러지고, 글씨가 삐뚤어졌다는 이야기가 함께 나오곤 하죠. 정작 목은 별로 아프지 않고요.
경추 척수병증입니다. 목뼈 안을 지나가는 척수가 서서히 눌리는 병이죠.
목차목디스크와는 다른 병입니다
목에서 팔로 가는 신경은 척수라는 굵은 줄기에서 가지처럼 갈라져 나옵니다. 흔히 말하는 목디스크는 대개 이 가지가 눌리는 병입니다. 그래서 한쪽 팔이 저리고 아프며, 통증도 꽤 심하죠. 목디스크 증상은 목디스크 증상, 목보다 팔이 아픈 이유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척수병증은 가지가 아니라 줄기가 눌립니다. 줄기에는 손과 다리, 대소변까지 온몸으로 가는 신호가 지나가기 때문에, 한쪽 팔이 아니라 양손과 두 다리에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통증이 주된 증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아프지 않으니 병원을 늦게 찾게 되고, 이것이 이 병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근거가 궁금하다면 — 척수병증이 생기는 과정
퇴행성 경추 척수병증(Degenerative Cervical Myelopathy)은 성인에서 척수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주로 경추 척추증성 척수병증(Cervical Spondylotic Myelopathy)이라는 이름으로 다룹니다.
나이가 들면서 디스크 높이가 줄고 골극이 자라며 황색인대가 두꺼워지면 척추관이 좁아져 척수가 눌립니다. 선천적으로 척추관이 좁은 경우도 원인이 됩니다. 목을 젖히면 황색인대가 안으로 접혀 뒤쪽 압박이 커지고, 굽히면 척수가 늘어나며 앞쪽 골극에 눌리는 동적인 요인도 작용합니다.
척수 압박은 팔다리 마비뿐 아니라 자율신경 장애로 대소변과 성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눌린 척수의 혈류 장애와 염증 반응이 손상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신호가 옵니다
손에서는 섬세한 동작이 먼저 문제가 됩니다. 단추 채우기, 젓가락질, 글씨 쓰기 같은 것들이죠. 양손이 저리고 장갑을 낀 것처럼 둔하다고 느끼는 분도 많습니다.
다리에서는 걸음이 불안정해집니다. 휘청거려서 벽이나 난간을 잡게 되고, 다리가 뻣뻣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걸음 이상이 먼저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병원을 찾는 계기는 대개 손입니다.
진행하면 소변이 급하거나 참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목을 숙일 때 등이나 팔다리로 전기가 오듯 찌릿한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거가 궁금하다면 — 증상의 빈도
Behrbalk 등(2013)이 척수병증으로 수술받은 환자 42명을 분석한 결과, 진단 당시 가장 흔한 증상은 팔·손 저림(85.7%), 걸음 불안정(66.6%), 팔 근력 약화(61.9%), 목 통증(59.5%), 다리 저림(50%), 다리 근력 약화(42.8%), 손놀림 저하(35.7%), 소변 조절 이상(16.6%) 순이었습니다.
교과서는 환자의 약 20%에서 방광 기능 장애가 동반되나 대변 실금은 드물고, 목 통증은 있을 수 있지만 팔다리 통증은 없는 경우가 많다고 기술합니다. 목을 숙일 때 전기가 오듯 퍼지는 느낌은 레르미트 징후(Lhermitte Sign)라고 합니다.
왜 늦게 발견될까
손이 저리니 손목을 보고, 팔이 저리니 목디스크나 팔 신경 문제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걸음이 불안한 건 나이 탓으로 넘기고요.
실제로 척수병증으로 수술받은 환자들을 조사해 보면, 처음 병원을 찾은 뒤 진단받기까지 평균 2년 넘게 걸렸고 그사이 여러 병원을 거쳤습니다. 가장 흔한 오진이 손목터널증후군이었고요.
문제는 척수가 한번 손상되면 잘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증상이 생긴 뒤 오래 지날수록 수술을 해도 돌아오는 부분이 적습니다.
근거가 궁금하다면 — 진단 지연에 관한 연구
Behrbalk 등(2013)의 연구에서 척수병증 환자 42명(평균 52.5세)이 첫 진료부터 진단까지 걸린 시간은 평균 2.2년(표준편차 2.3년, 범위 1.7개월~8.9년)이었고, 그동안 평균 5.2회 진료를 받았습니다. 첫 진료는 가정의학과가 69%, 정형외과가 21.4%였고, 가장 흔한 오진은 손목터널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으로 43.1%였습니다. 다음은 신경학적 결손 없는 경추 신경근병증(Radiculopathy)이었습니다.
수술 당시 MRI에서 40%는 이미 척수연화증(Myelomalacia) 소견을 보였습니다. 교과서는 증상 기간이 길수록, 수술 전 척수병증이 심할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수술 후 예후가 좋지 않다고 기술합니다.
진찰에서 먼저 보는 것
척수병증은 진찰로 상당 부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무릎이나 팔꿈치 반사가 지나치게 튀는지, 손가락 끝을 튕겼을 때 엄지가 따라 굽는지, 발바닥을 긁었을 때 엄지발가락이 위로 들리는지를 봅니다.
발끝과 뒤꿈치를 붙여 한 줄로 걸어 보면 균형이 무너지는 것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견이 있으면 목 MRI로 척수가 실제로 눌렸는지 확인하게 되죠.
여기서도 사진과 증상이 같은 곳을 가리키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MRI에 디스크가 보이는데 괜찮다는 이유에서 다뤘습니다.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다른 신경 질환과 감별하기 위해 근전도 같은 신경 검사를 함께 하기도 합니다.
근거가 궁금하다면 — 진찰 소견과 검사
눌린 부위에서는 하위운동신경원 징후, 그 아래로는 상위운동신경원 징후가 나타납니다. 상위운동신경원 징후는 반사 항진, 호프만 징후(Hoffmann Sign), 바빈스키 징후(Babinski Sign), 간대성 경련(Clonus)으로 확인합니다.
중증도는 주로 수정 일본정형외과학회 점수(modified Japanese Orthopaedic Association score, mJOA)와 보행 장애 정도를 나타내는 Nurick 분류로 평가합니다.
근전도(Electromyography, EMG)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이나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 MS)처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질환을 감별하는 데 필요하고, 체성감각 유발전위(Somatosensory Evoked Potential, SSEP)는 척수 기능을 더 직접적으로 평가합니다.
저절로 좋아질까
오래 그대로 머무는 분도 있지만, 좋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전형적인 모습은 한동안 그대로 있다가 어느 순간 한 단계 나빠지고, 다시 머물다 또 나빠지는 계단식 악화입니다.
한 번 내려간 계단은 저절로 올라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미 척수가 눌린 상태에서는 가볍게 넘어지는 정도의 충격에도 갑자기 크게 나빠질 수 있고요.

근거가 궁금하다면 — 자연 경과
고전적인 관찰에서 척수병증 환자의 약 75%는 계단식으로, 20%는 서서히 꾸준히 나빠졌고, 5%는 갑자기 증상이 시작됐습니다.
Karadimas 등(2013)의 체계적 고찰에서는 수술하지 않은 환자의 20~62%가 3~6년 사이에 JOA 점수가 1점 이상 나빠졌습니다. 한편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환자도 있어 경과는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이 고찰을 갱신한 Fehlings 등(2017)의 진료지침에서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비율이 1년 6%, 2년 21%, 3년 28%, 10년 56%로 늘었습니다.
교과서는 급성으로 나빠지는 경우가 주로 가벼운 외상이 반복된 뒤에 많다고 기술합니다. 진료지침은 척수병증 환자의 척수손상으로 인한 입원이 1,000인년당 13.9건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서둘러 확인이 필요한 경우
몇 주 사이에 손놀림이나 걸음이 눈에 띄게 나빠질 때, 넘어지거나 부딪힌 뒤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저림이 심해졌을 때, 소변을 참기 어려워졌을 때는 서둘러 진료를 받아 보시길 권합니다. 척수가 더 다치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거든요.
치료는 얼마나 심한지에 따라 정합니다
증상이 중간 이상이라면 수술로 척수 압박을 풀어 주는 것이 권고됩니다. 수술의 일차 목적은 더 나빠지는 걸 막는 것이지만, 수술 뒤 손 기능과 걸음이 좋아지는 분도 많습니다.
증상이 가벼우면 바로 수술하거나, 재활을 하면서 가까이 지켜보는 방법 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다만 지켜보다가 나빠지면 수술을 고려하게 됩니다.
사진에서 척수가 눌려 있는데 아무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예방 목적으로 수술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어떤 증상이 생기면 바로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알고 계시는 게 중요하죠.

근거가 궁금하다면 — 진료지침과 수술 결과
Fehlings 등(2017)의 퇴행성 경추 척수병증 진료지침은 mJOA 점수로 경증(15~17점), 중등도(12~14점), 중증(11점 이하)을 나눕니다. 중등도와 중증은 수술을 권고하고, 경증은 수술 또는 감독하에 체계적인 재활을 시도하도록 제안합니다. 비수술 치료 중 신경학적으로 나빠지면 수술을 권고하고, 호전이 없으면 수술을 제안합니다.
증상 없이 영상에서만 척수 압박이 보이는 경우에는 예방적 수술을 권하지 않고, 진행 위험과 척수병증 증상을 교육하며 경과를 관찰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사람의 8%가 1년 안에, 22.6%가 중앙값 44개월 사이에 척수병증으로 진행했습니다. 팔 신경근병증 증상이 함께 있으면 진행 위험이 더 높아 수술이나 가까운 관찰을 상의하도록 했습니다.
Fehlings 등(2013)이 12개 기관에서 수술받은 278명을 추적한 전향적 연구에서는 경증, 중등도, 중증 모든 군에서 1년 후 mJOA, Nurick 등급, 목 장애지수, 삶의 질이 유의하게 좋아졌습니다. 합병증은 18.7%에서 발생했고 중증도에 따른 차이는 없었습니다.
손이 둔해졌다면 목도 한 번
손목 치료를 받는데 좋아지지 않는다면, 양손이 함께 저리다면, 걸음이 예전 같지 않다면 한 번은 목을 의심해 볼 만합니다. 손 저림의 원인을 구분하는 단서는 손이 저린 이유, 손목 때문일까 목 때문일까에서 정리했습니다.
걸을 때 다리가 아파서 쉬어야 한다면 허리 쪽 문제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척수병증은 다리가 아프기보다 균형이 무너지는 쪽에 가깝죠. 허리에서 오는 걷기 장애는 걸으면 다리가 아프고, 앉으면 괜찮아지는 이유에서 다뤘습니다.
척수병증은 아프지 않다는 이유로 가볍게 넘기기 쉬운 병입니다. 하지만 일찍 발견할수록 지킬 수 있는 것이 많은 병이라, 손놀림과 걸음의 작은 변화를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1.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척추학. 제3판.
2. Behrbalk E, Salame K, Regev GJ, Keynan O, Boszczyk B, Lidar Z. Delayed diagnosis of cervical spondylotic myelopathy by primary care physicians. Neurosurg Focus. 2013;35(1):E1. doi:10.3171/2013.3.FOCUS1374
3. Fehlings MG, Wilson JR, Kopjar B, Yoon ST, Arnold PM, Massicotte EM, et al. Efficacy and safety of surgical decompression in patients with cervical spondylotic myelopathy: results of the AOSpine North America prospective multi-center study. J Bone Joint Surg Am. 2013;95(18):1651-8. doi:10.2106/JBJS.L.00589
4. Karadimas SK, Erwin WM, Ely CG, Dettori JR, Fehlings MG. Pathophysiology and natural history of cervical spondylotic myelopathy. Spine (Phila Pa 1976). 2013;38(22 Suppl 1):S21-36. doi:10.1097/BRS.0b013e3182a7f2c3
5. Fehlings MG, Tetreault LA, Riew KD, Middleton JW, Aarabi B, Arnold PM, et al. A clinical practice guideline for the management of patients with degenerative cervical myelopathy: recommendations for patients with mild, moderate, and severe disease and nonmyelopathic patients with evidence of cord compression. Global Spine J. 2017;7(3 Suppl):70S-83S. doi:10.1177/219256821770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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