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는 별로 안 아픈데 다리가 저려요.”
진료실에서 정말 자주 듣는 말입니다. 다리가 저리면 허리디스크부터 떠올리기 쉽지만, 원인이 허리만 있는 건 아닙니다. 허리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신경 길 어디에서든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혈관이나 당뇨 같은 몸 전체의 병이 원인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어디가, 어떤 모양으로, 언제 저리세요?”부터 여쭤봅니다. 이 세 가지만 잘 들어도 원인을 꽤 좁힐 수 있거든요. 손 저림은 손이 저린 이유, 손목 때문일까 목 때문일까에서 다뤘는데, 다리도 원리는 같습니다.
목차어디가 어떻게 저린지부터
다리로 가는 신경은 허리의 척추관에서 나와 엉덩이를 지나 다리로 내려갑니다. 중간에 무릎 바깥, 발목 안쪽처럼 좁은 길목을 지나 발끝까지 가죠. 이 길의 어디가 눌리느냐에 따라 저린 모양이 달라집니다.
허리에서 신경 뿌리가 눌리면 한쪽 다리에 엉덩이에서 아래로 선처럼 뻗치는 저림과 통증이 생깁니다. 말초신경 전체가 약해지는 말초신경병증은 양쪽 발끝에서 시작해 양말 신는 부위로 번지고요. 길목 한 곳에서 신경이 눌리면 그 신경이 맡은 한 곳만 저립니다.

한쪽 다리로 뻗친다면, 허리
다리 저림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원인은 역시 허리입니다. 허리디스크나 척추관 협착증으로 신경 뿌리가 눌리면 엉덩이에서 허벅지 뒤나 옆, 종아리를 지나 발까지 저림과 통증이 뻗칩니다. 대개 한쪽 다리에 오고, 허리나 엉덩이 통증이 같이 있는 경우가 많죠. 허리디스크가 왜 다리를 아프게 하는지는 허리디스크 증상, 허리보다 다리가 아픈 이유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흔히 “몇 번 신경이 눌리면 다리 어디가 저린다”는 지도(피부분절)로 설명하는데, 실제 환자들은 이 지도대로 정확히 아프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신경 뿌리 통증 환자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허리 신경 통증의 3분의 2가량이 지도와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린 위치는 어디까지나 단서이고, 진찰과 검사를 함께 봐야 합니다.
근거가 궁금하다면 — 신경 뿌리 통증과 피부분절
Murphy 등(2009)은 목이나 허리 신경 뿌리 통증으로 진단된 환자 169명의 신경 뿌리 226개에 대해, 환자가 그린 통증 그림을 표준 피부분절 지도와 비교했습니다. 허리 신경 뿌리 통증의 64.1%, 목 신경 뿌리 통증의 69.7%가 피부분절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외는 경추 4번(60.0%가 피부분절을 따름, 다만 5명뿐)과 천추 1번(64.9%가 피부분절을 따름)이었습니다. 연구진은 대부분의 경우 신경 뿌리 통증이 특정 피부분절을 따른다고 기대해서는 안 되며, 천추 1번 신경은 예외일 수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교과서는 허리디스크와 감별해야 할 질환으로 척수 종양, 척추관 협착증, 감염, 골반 안의 종양이나 자궁내막증 같은 신경얼기 질환, 그리고 당뇨병, 대퇴신경감각이상증, 이상근증후군, 총비골신경마비, 족근관증후군 같은 말초신경 질환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걸으면 저리고 쉬면 나아진다면
걷다 보면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멈춰 서야 하는 경우,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척추관 협착증, 그리고 다리로 가는 혈관이 좁아진 경우입니다.
둘을 구분하는 단서는 어떻게 나아지느냐입니다. 협착증은 앉거나 허리를 숙여야 나아지고, 그것도 천천히 풀리죠. 오르막길이나 자전거처럼 허리를 숙이는 자세에서는 오히려 덜 아프기도 합니다. 반면 혈관 문제는 허리 자세와 상관없이 멈춰 서기만 해도 금방 나아지고, 자전거를 타도 아픕니다. 혈관이 원인이면 발등 맥박이 약하게 만져지거나 안 만져지고요. 이 차이는 걸으면 다리가 아프고, 앉으면 괜찮아지는 이유에서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양쪽 발끝이 저리다면
양쪽 발끝이나 발바닥이 함께 저리고, 시간이 지나며 발목과 종아리 쪽으로 천천히 올라온다면 말초신경병증을 생각해야 합니다. 허리 문제와 달리 양쪽에 대칭으로 오고, 양말을 신는 부위에 맞춰 저리는 게 특징이죠. 저림이 무릎 높이까지 올라올 즈음이면 손끝도 저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밤에 더 심하고, 걷거나 쉬는 것과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생각보다 흔한 병이기도 합니다. 50세 이상을 조사한 연구에서 20명 중 1명꼴로 말초신경병증이 있었고, 80세 이상에서는 8명 중 1명꼴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그중 절반 가까이는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당뇨입니다. 그 밖에 오랜 음주, 비타민 B12 결핍, 항암제, 만성 콩팥병, 갑상선 기능 저하 등이 원인이 되고, 검사를 다 해도 원인을 못 찾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발 감각이 둔해지면 상처가 나도 모르고 지나치거나 균형을 잡기 어려워 넘어지기 쉬우니, 원인을 확인하고 발을 잘 살펴야 합니다.
당뇨가 있다면 저린 증상이 없어도 1년에 한 번은 발 신경 검사를 받아 보세요. 당뇨 신경병증은 절반 정도가 증상 없이 진행되거든요.

근거가 궁금하다면 — 말초신경병증의 빈도와 검사
Hanewinckel 등(2016)은 50세 이상 지역 주민 1,310명(평균 70세)에게 설문, 신경학적 진찰, 신경전도검사를 시행했습니다. 확실한 다발신경병증은 5.5%(네덜란드 인구로 연령 보정 시 4.0%)였고, 남성(6.7%)이 여성(4.5%)보다 많았으며, 50~60세 1.2%, 60~70세 3.9%, 70~80세 4.4%, 80세 이상 13.2%로 나이가 들수록 늘었습니다. 49%는 이 연구에서 처음 진단됐고, 46%는 원인 불명, 당뇨는 31%에서 확인돼 가장 흔한 위험 요인이었습니다.
Callaghan 등(2015)은 원위부 대칭성 다발신경병증이 발가락에서 시작해 천천히 위로 올라오며, 대개 무릎 높이에 이르러야 손끝으로 번진다고 설명합니다. 균형 장애와 낙상, 특히 당뇨 환자에서는 궤양과 절단 위험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당뇨(32~53%)이고 술, 비타민 B12 결핍, 유전성 질환, 항암제, 만성 콩팥병 등이 뒤를 이으며, 24~27%는 원인 불명입니다.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환자에게는 혈액검사(공복 혈당, 당부하검사, 비타민 B12, 혈청 단백 전기영동 등)를 권하고, 증상이 비대칭이거나 운동 마비가 두드러지거나 빠르게 진행하는 등 비전형적이면 신경과 진료를 권합니다. 전형적인 경우 척추 MRI는 진단에 큰 역할이 없다고 정리합니다.
미국당뇨병학회의 2017년 성명(Pop-Busui 등)은 제2형 당뇨는 진단 시점부터, 제1형 당뇨는 진단 5년 뒤부터 매년 다발신경병증을 평가하고, 매년 10g 모노필라멘트 검사로 궤양 위험이 있는 발을 확인하도록 권고합니다. 당뇨 말초신경병증의 최대 50%는 증상이 없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교과서도 말초신경병증이 양말 신는 부위에 대칭으로 오고, 근위부보다 원위부에 심하며, 밤에 심해지고 활동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협착증과 구별되며, 당뇨, 비타민 결핍, 항암 치료, 약물 남용, 알코올, 독소 노출 여부를 확인하고 근전도 검사가 감별에 도움이 된다고 기술합니다.
한 곳만 저리다면
다리의 한 부분만 저리다면 신경이 지나는 길목 한 곳에서 눌린 경우일 수 있습니다. 교과서도 허리디스크와 감별할 질환으로 이런 말초신경 눌림을 꼽습니다.
허벅지 바깥쪽이 저리고 화끈거린다면
허벅지 앞바깥쪽이 저리거나 화끈거리고, 남의 살 같다면 대퇴신경감각이상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허벅지 바깥쪽 피부 감각을 맡는 신경이 골반 앞쪽 뼈 근처에서 눌려 생기죠. 이 신경은 감각만 맡아서 다리 힘은 빠지지 않습니다.
살이 찌거나, 임신했거나, 꽉 끼는 바지나 벨트를 즐겨 입는 분, 당뇨가 있는 분에게 잘 생깁니다. 오래 서 있거나 걸을 때 심해지고 앉으면 나아지기도 해서 허리 문제와 헷갈리기 쉽습니다.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도 많아서, 누르는 원인을 먼저 없애 보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신경 주변에 주사를 놓기도 합니다.
종아리 바깥쪽과 발등이 저리고 발목이 처진다면
종아리 바깥쪽과 발등이 저리고, 발목을 위로 들어 올리는 힘이 약해져 걸을 때 발끝이 끌린다면 무릎 바깥쪽 아래에서 종아리 바깥 신경(비골신경)이 눌렸을 수 있습니다. 이 신경은 무릎 바깥 아래의 종아리뼈 윗부분을 감싸듯 피부 바로 아래로 지나가서, 밖에서 누르기 쉽습니다.
다리를 꼬고 앉는 습관을 가장 흔한 원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위에 올린 다리 쪽 신경이 아래 무릎에 눌리는 건데, 습관만 고쳐도 대부분 회복된다고 하죠. 짧은 기간에 살이 많이 빠졌을 때, 오래 쪼그려 앉거나 무릎 꿇고 일한 뒤, 무릎 아래까지 깁스를 한 뒤에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발목이 처지는 건 허리 5번 신경이 눌려도 생깁니다. 둘을 가를 때는 발목을 안쪽으로 돌리는 힘을 봅니다. 비골신경 마비에서는 이 힘이 멀쩡하지만, 허리 5번 신경 문제에서는 같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정확한 구별은 진찰과 신경전도검사로 합니다.
발바닥이 저리다면
한쪽 발바닥이 저리고 화끈거린다면 발목 안쪽 복숭아뼈 뒤의 좁은 통로에서 신경이 눌리는 족근관증후군도 생각해 봅니다. 다만 양쪽 발바닥이 같이 저리다면 앞에서 말한 말초신경병증을 먼저 의심합니다.
근거가 궁금하다면 — 말초신경 눌림
Cheatham 등(2013)의 문헌 고찰에 따르면 대퇴신경감각이상증은 가쪽넙다리피부신경(Lateral Cutaneous Nerve of the Thigh)이 눌려 허벅지 바깥쪽이나 앞바깥쪽에 통증, 화끈거림, 저림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일반 인구에서 1만 인년당 4.3건, 당뇨 환자에서는 10만 인년당 247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고, 비만(체질량지수 30 이상), 임신, 꽉 끼는 옷, 안전벨트, 외상, 당뇨, 알코올 중독 등이 관련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증상은 가볍게 저절로 좋아지기도 하고, 오래 서 있거나 걸을 때 심해지고 앉으면 나아지기도 합니다. 초음파 유도 신경 차단술을 받은 20명이 2개월 뒤 모두 증상이 사라졌다는 보고도 소개합니다.
Stewart(2008)는 발목 처짐의 가장 흔한 원인이 종아리뼈 목 부위의 온종아리신경(비골신경) 병변이며, 다른 원인으로 허리 5번 신경근병증, 허리 신경얼기 병변, 좌골신경 부분 손상 등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비골신경 병변에서는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는 것이 가장 흔한 원인일 것이라는 저자의 견해를 밝히며, 대부분 습관을 고치면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최근의 체중 감소, 오래 쪼그려 앉거나 무릎 꿇기, 무릎 아래 깁스나 보조기도 원인으로 꼽습니다. 비골신경 병변에서는 발목을 안쪽으로 돌리는 후경골근의 힘과 무릎·발목 반사가 정상이어서, 이를 허리 5번 신경근병증과의 구별에 이용합니다.
밤마다 다리가 근질거리고 움직이고 싶다면
저녁이나 밤에 가만히 있으면 다리가 불편하고 저린 느낌이 들어 자꾸 움직이고 싶고, 움직이면 나아진다면 하지불안증후군일 수 있습니다. 비교적 흔한 병으로 철분 결핍, 만성 콩팥병, 임신과 함께 생기기도 하죠. 협착증과 헷갈리기도 하는데, 걸을 때가 아니라 쉬고 있을 때 심해진다는 점이 다릅니다.
손도 같이 저리고 걸음이 불안하다면
다리뿐 아니라 손도 저리고, 단추 잠그기나 젓가락질이 서툴러지고, 걸음이 불안해졌다면 허리가 아니라 목에서 척수가 눌리는 척수병증일 수 있습니다. 다리 저림의 원인으로 놓치기 쉬운데, 늦게 발견하면 회복이 어려워 빨리 확인해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손이 저리고 젓가락질이 서툴러졌다면에서 다뤘습니다.
이런 저림은 기다리지 마세요
대소변이 잘 안 나오거나 참기 어렵고 항문 주변 감각이 둔해졌다면 허리 신경이 심하게 눌린 응급 상황일 수 있습니다. 갑자기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감각이 없어지고 말이 어눌해졌다면 뇌졸중일 수 있고요. 두 경우 모두 바로 응급실로 가셔야 합니다.
다리 힘이 점점 빠지거나 발목이 처질 때, 손도 함께 저리고 걸음이 불안할 때, 다리가 차갑고 창백하면서 걸을 때 종아리가 아플 때는 빨리 진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저린 곳을 그려서 오세요
진료실에서 다리 저림의 원인을 찾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 검사보다 이야기입니다. 감각, 근력, 반사를 진찰하고 필요하면 신경전도검사나 MRI, 혈액검사를 하지만, 그 방향을 정해 주는 건 환자분이 말해 주는 저림의 모양이거든요. 양쪽 발이 대칭으로 저린 말초신경병증이라면 허리 MRI는 큰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병원에 오시기 전에 어디가, 언제, 어떻게 저린지를 한번 정리해 보세요. 저린 곳을 그림으로 그려 오셔도 좋습니다. 걸을 때인지 밤인지, 한쪽인지 양쪽인지, 당뇨나 음주, 최근 체중 변화가 있는지까지 말씀해 주시면 원인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참고문헌
1. 대한척추신경외과학회. 척추학. 제3판.
2. Stewart JD. Foot drop: where, why and what to do? Pract Neurol. 2008;8(3):158-69. doi:10.1136/jnnp.2008.149393
3. Murphy DR, Hurwitz EL, Gerrard JK, Clary R. Pain patterns and descriptions in patients with radicular pain: does the pain necessarily follow a specific dermatome? Chiropr Osteopat. 2009;17:9. doi:10.1186/1746-1340-17-9
4. Cheatham SW, Kolber MJ, Salamh PA. Meralgia paresthetica: a review of the literature. Int J Sports Phys Ther. 2013;8(6):883-93.
5. Callaghan BC, Price RS, Feldman EL. Distal symmetric polyneuropathy: a review. JAMA. 2015;314(20):2172-81. doi:10.1001/jama.2015.13611
6. Hanewinckel R, Drenthen J, van Oijen M, Hofman A, van Doorn PA, Ikram MA. Prevalence of polyneuropathy in the general middle-aged and elderly population. Neurology. 2016;87(18):1892-8. doi:10.1212/WNL.0000000000003293
7. Pop-Busui R, Boulton AJ, Feldman EL, Bril V, Freeman R, Malik RA, et al. Diabetic neuropathy: a position statement by the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 Diabetes Care. 2017;40(1):136-54. doi:10.2337/dc16-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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